한명회 묘소

충남 천안시 수신면에 잠든 한명회 묘소. 도굴, 부관참시, 복관까지 500년의 파란을 담은 이 무덤이 경부고속도로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직접 가는 방법까지 정리했어요.



1. 한명회 묘소의 위치 — 청주 땅을 원했던 남자가 천안에 묻힌 이유




정확한 주소: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속창리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부산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천안휴게소에서 차로 약 5분이 지났을 때 도로 좌측에 커다란 봉분 두 개가 눈에 들어와요. 앞쪽이 한명회의 묘, 뒤쪽이 부인 여흥 민씨의 묘예요.

그런데 사실 한명회는 청주에 묻히길 원했어요.

청주한씨사감(淸州韓氏史鑑)에는 이런 기록이 남아 있어요.

"나의 선조 고향은 청주요, 나의 고향도 청주이니 내가 죽거든 청주 땅에 묻어달라."

그런데 왜 지금은 천안에 묘가 있을까요?

사실 이 땅의 비밀이 있어요.

현재 묘가 있는 수신면 속창리는 조선 시대엔 청주목(淸州牧) 관할이었어요. 즉, 행정구역상으로는 청주 땅이었던 거예요. 지금은 천안시에 편입되어 있지만, 한명회가 묻힐 당시에는 어엿한 청주 땅이었어요.

유언을 지키면서도, 지금 우리 눈엔 천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러니. 역사란 이렇게 재미있어요.



2. 묘역의 구성 — 15세기 공신 묘역의 진수를 보다

한명회 묘역은 2024년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공식 지정됐어요.

묘역 안에는 단순히 봉분만 있는 게 아니에요. 15~16세기 조선 최고 권신의 묘역답게 꽤 풍성한 구성을 갖추고 있어요.

📌 묘역 구성 한눈에 보기

구성 요소 설명
봉분 2기 한명회 + 부인 여흥 민씨
묘표 2기 묘의 주인을 알리는 비석
신도비(神道碑) 고인의 행적을 기록한 기념비
장명등(長明燈) 무덤 앞을 밝히는 석등
무석인(武石人) 2쌍 무인 석상, 매우 이례적인 쌍 배치
석축 담장 봉분 둘레를 감싼 돌담 (매우 이례적)
충모사(忠慕祠) 묘역 아래에 위치한 한명회 사당

여기서 주목할 포인트는 담장과 무석인 쌍 배치예요.

조선시대 사대부 묘에서 봉분 주위를 돌담으로 두르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방식이에요. 그리고 무석인(무인 형상의 석상)을 두 쌍씩 세운 것도 일반적이지 않아요. 이런 구성은 당대 최고위 공신에게만 허용된 특별한 묘역 형식이었다는 거예요.

신도비의 비문은 조선 전기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서거정(徐居正)**이 직접 썼어요. 서거정은 성종 대 문화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에요. 그 글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사료적 가치예요.

💡 꿀팁: 신도비는 묘역이 만들어지고 불과 1년 뒤인 1488년에 세워졌어요. 서거정이 직접 짓고 쓴 글씨가 새겨진 이 비석은, 현재 문화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조각 수준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3. 세 번 수난을 당한 무덤 — 부관참시, 도굴, 그리고 복원




한명회의 묘소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역사적 인물의 묘소라서가 아니에요. 이 무덤이 살아온 '이야기' 자체가 드라마예요.

첫 번째 수난 — 부관참시 (1504년)

한명회가 세상을 떠난 지 17년 후, 연산군이 갑자사화를 일으켰어요. 무덤이 파헤쳐지고 관이 쪼개졌으며, 시신이 꺼내져 목이 잘렸어요. 석물(石物)도 함께 훼손됐어요.

두 번째 복원 — 중종 반정 후 예장 (1506년)

연산군이 쫓겨나고 중종이 즉위하면서 한명회는 신원(억울함 해소)됐어요. 예를 갖춰 다시 장례를 치렀고(예장, 禮葬), 묘역이 원위치에 다시 조성됐어요. 땅속에 묻혀 있던 신도비도 이때 다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돼요.

세 번째 수난 — 현대의 도굴 (2000년)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2000년 2월, 한명회의 무덤이 파헤쳐졌어요. 이번엔 도굴꾼이었어요. 무덤 속에 있던 지석(誌石) 24매가 도굴돼 사라졌어요.

지석이란 무덤 주인의 출생, 행적, 가계를 기록해 관 옆에 함께 묻는 도자기 형태의 기록물이에요. 화보잡지 크기(가로 25cm, 세로 30cm)의 분청사기 24매에는 계유정난의 비상 상황, 임금과 나눈 대화, 부관참시 후 예장한 기록까지 상세히 담겨 있었어요.

문화재청 감정 결과, **"보물급 문화재로 시가 산정이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귀한 유물이었어요.

다행히 2009년 6월, 장물을 유통하려던 도굴범이 경찰에 검거되면서 지석 24매가 전량 회수됐어요. 무려 9년 만에 세상에 공개된 거예요.

💡 아무도 말 안 해주는 포인트: 지석에 담긴 기록 중 가장 충격적인 건 계유정난 직전 한명회의 결의문이에요. 뜻을 같이하는 자들을 모아 "다른 마음을 갖는 자는 마땅히 베어 없앨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그대로 새겨져 있었어요. 무덤 속에 500년 넘게 잠들어 있던 그 결의가, 도굴이라는 황당한 경로를 통해서야 비로소 세상에 나온 거예요.

 


4. 직접 방문해보니 — 경부고속도로 옆 역사 유적지의 묘한 감동

한명회 묘역은 사실 접근성이 꽤 좋아요.

경부고속도로 상행선(부산 → 서울 방향)을 달리다 보면 육안으로도 봉분이 보일 정도예요.

장산1리 마을회관에서 남쪽으로 약 600m 거리에 위치해 있고, 묘역 아래에는 사당인 **충모사(忠慕祠)**가 있어요. 주변에는 청주 한씨 충성공파의 다른 묘역들도 함께 있어서, 조선 전기 공신 가문의 묘역 분위기가 한눈에 느껴져요.

제가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고속도로 소음이 들릴 만큼 가까운 곳에 500년 된 무덤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는 거였어요.

수많은 차들이 그 앞을 무심코 지나치는 동안, 한명회는 거기서 500년째 잠들어 있었던 거예요.

역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묘역 앞에 서는 순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올 거예요.



5. 결론 — 한명회 묘소가 주는 교훈과 실생활 방문 팁




한명회의 묘소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에요.

살아서는 영의정, 왕의 장인 × 2, 부관참시, 복관, 도굴, 문화재 지정까지 —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이 이 작은 묘역 안에 압축되어 있어요.

권력의 정점에서 살았지만,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덤은 500년을 버텨냈고, 지금은 충청남도 기념물로 보호받고 있어요.

어쩌면 이게 역사의 공정한 판결인지도 모르겠어요.


✅ 한명회 묘소 방문 실생활 꿀팁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것들:

  • 위치: 충남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속창리 (경부고속도로 상행 방향에서 육안으로 보임)
  • 접근 방법: 네이버 지도에서 '한명회 묘역' 또는 '충모사 천안'으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어요.
  • 방문 시간: 별도 입장료 없음. 청주 한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어 평일 방문 시 조용한 분위기에서 관람 가능해요.
  • 함께 보면 좋은 것: 묘역 아래 충모사 + 신도비(서거정 친필 비문)를 꼭 확인해 보세요. 비석 옆에 서면 15세기 조선의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 역사 공부 팁: 방문 전에 조선왕조실록 누리집(sillok.history.go.kr)에서 '한명회'를 검색해 보세요. 무려 2,300건이 넘는 기록이 나와요. 그중 갑자사화 부분을 미리 읽고 가면 묘소 앞에 섰을 때 전혀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어요.
  • 천안 시티투어 코스: 한명회 묘역은 천안 시티투어 공식 코스에 포함되어 있어요. 주변 독립기념관, 유관순 열사 유적지와 함께 하루 코스로 묶으면 알차게 여행할 수 있어요!


자주 묻는 질문 (FAQ)

Q1. 한명회 묘는 왜 청주가 아닌 천안에 있나요? 한명회는 청주에 묻히길 원했어요. 실제로 묘가 있는 수신면 속창리는 조선 시대엔 청주목 관할이었어요. 현재 행정구역상 천안시에 편입됐지만, 당시엔 청주 땅이었기 때문에 유언은 지켜진 셈이에요.

Q2. 한명회 묘소는 일반인도 방문할 수 있나요? 네, 방문 가능해요. 별도 입장료는 없으며 청주 한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어요. 다만 개인 소유 문중 묘역이니 조용하고 예의 바르게 관람하는 것이 좋아요.

Q3. 도굴당한 지석 24매는 지금 어디 있나요? 2009년 회수된 지석 24매는 청주 한씨 충성공파 종친회가 천안시에 기탁했어요. 현재 천안 지역 박물관 또는 관련 기관에서 보관 중이에요.

Q4. 신도비의 비문은 누가 썼나요? 조선 전기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서거정(徐居正)**이 직접 짓고 썼어요. 1488년, 묘역 조성 1년 만에 세워졌으며 조각 수준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Q5. 한명회 묘역이 문화재로 지정된 건 언제인가요? 2024년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됐어요. 기존에는 신도비만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332호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묘역 전체가 일괄 지정되어 더 체계적으로 보호·관리받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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